토마스 맨턴, 우리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
우리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
토마스 맨턴(Thomas Manton)
“내가 주께 죄를 범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11).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힘써야 할 본분은 그분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반드시 올바른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알고 즐거워하는 모든 과정은 결국 우리의 삶에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말씀을 마음에 품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실천 덕목입니다. 성경은 이를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은 이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라고 명하며, 욥기 22장 22절은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두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아주 소중한 보물을 보관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해야 합니다. 단순히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꺼내 쓸 수 있는 풍성한 보화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단순히 머릿속 지식이나 기억의 파편으로만 떠다니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감정 자체가 그 말씀에 깊이 감동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는 골로새서 3장 16절 말씀처럼,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여 그 말씀이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고 당연한 존재가 되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낯선 손님처럼 문밖에 세워두지 말고, 당신의 집안에 함께 거하는 식구처럼 친밀하게 대하며 마음의 가장 깊은 방으로 모셔 들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향해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라며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낯설어하고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매우 큰 악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둔다’ 혹은 ‘간직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네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1]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력을 통해 영혼 안으로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2] 믿음으로 그 말씀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믿음을 통해 마음속에 정착됩니다. 믿음과 결부되지 않은 말씀은 금세 증발하고 맙니다. [3] 말씀을 기쁘게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정욕과 편견에 사로잡혀 당신의 말씀이 거할 곳이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말씀이 권능으로 마음을 두드려도, 그것을 달갑지 않은 손님처럼 여겨 내쫓아서는 안 됩니다. [4]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잠시 반짝이는 감정의 기쁨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참된 유익이 되려면 마음속에 항구적인 사랑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말씀의 뿌리가 내리지 않는다면 결실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도가 말씀을 마음에 간직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무엇보다 필요할 때 즉시 꺼내 쓰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원리를 배우는 이유는 모든 상황에 그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숨겨져 있으면, 위기의 순간이나 의무를 다해야 할 때 즉시 혀와 행동으로 나타나 우리를 인도합니다. 살림을 잘하는 주부는 사소한 것 하나를 사려고 매번 시장에 뛰어가지 않습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 비로소 위로를 찾아 헤매거나 급히 책을 뒤적이는 것보다, 이미 마음에 간직한 말씀을 꺼내는 것이 훨씬 복된 일입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 그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형편이 아니라 넉넉히 비축된 영적 자산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 비축은 우리 삶에 구체적인 유익을 줍니다. [1] 먼저 헛된 생각을 막아줍니다. 우리에게 악한 생각이 쉽게 찾아오는 이유는 영적 지식의 비축분이 적기 때문입니다. 주머니에 은화보다 잔돈이 더 많은 사람은 돈을 꺼낼 때 잔돈을 잡을 확률이 높듯, 말씀이 풍성하지 않으면 헛된 생각이 먼저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마음이라는 맷돌은 그 안에 넣은 것을 갈아냅니다. 곡식을 넣으면 가루가 나오지만 겨를 넣으면 겨만 나옵니다. [2] 홀로 있을 때나 외부의 도움이 없을 때도 우리 마음은 스스로 권고와 위로를 제공합니다. 성경이나 목회자가 곁에 없는 캄캄한 밤에도 내면에 저장된 말씀은 우리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3] 기도의 언어를 풍성하게 합니다. 영혼의 메마름은 말씀이 풍성히 거하지 않을 때 찾아옵니다. 마음이 말씀에 젖어 있다면 약속의 말씀들이 기도를 붙들어주고 감정을 넓혀주어 하나님 앞에 영혼을 쏟아놓게 도와줄 것입니다. 마음이 가득 차면 혀는 저절로 풀리기 마련입니다.
[4]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길잡이가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기면 잠언의 말씀처럼 다닐 때 인도하고, 잘 때 보호하며, 깰 때 대화의 상대가 되어줍니다. 아침의 첫 생각을 하나님으로 시작하게 하고, 업무 중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며, 밤에는 헛된 망상으로부터 지켜줍니다. [5] 유혹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기록된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잘 간직되어 적절히 사용될 때 사탄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합니다. 사탄에게 굴복하기 전에는 반드시 말씀을 잊어버리거나 말씀에 대한 사랑이 식는 과정이 선행됩니다. [6] 고난 중에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 낙심하는 이유는 대개 무지하거나 말씀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정원에 아픈 곳을 낫게 할 약초가 자라고 있어도 그것을 모르면 소용이 없듯, 말씀 속의 치료제를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7]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은혜롭게 만듭니다. 마음의 보물은 결국 혀를 통해 흘러나옵니다.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은 잡담 외에 줄 것이 없지만, 말씀을 채운 사람은 은혜로운 말을 쏟아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마음에 새긴 말씀을 강조하는 것이 혹 성령님의 사역을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은 분명 성령님이시지만, 성령님은 우리가 읽고 새긴 성경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성령님은 은혜를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미 소유한 은혜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물론 성도는 때로 유혹이나 나태함 때문에 말씀을 잊기도 합니다. 하갈 곁에 샘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기 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곁에 있는 위로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거룩하게 정화된 우리의 기억을 사용하여 시의적절하게 말씀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연구하고 마음에 갈무리해두지 않는 사람은 성령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풍성히 누리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라고 명령하신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심시키실 때 바로 이 방식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시기에 우리 또한 그 법을 마음 판에 새겨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키시지만 우리 또한 돌이켜야 하며, 하나님이 마음의 할례를 행하시지만 우리 또한 마음을 가칠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를 보존하고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매일 말씀의 복사본을 우리 마음에 새롭게 써 내려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여 그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세상에 태양이 없어서는 안 되듯, 그리스도인에게는 성경이 영적인 태양과 같습니다. 말씀을 자주 묵상하십시오. 묵상은 마음에 불을 지피는 과정입니다. 둥지를 자주 비우는 암탉이 알을 부화시킬 수 없듯이, 진리를 꾸준히 품고 있어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그렇다면 이를 가벼이 여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스스로의 마음에 계속 질문하십시오. 또한 말씀을 사랑함으로 받으십시오. 진리에 대한 사랑이 결핍될 때 배교가 시작됩니다. 말씀이 감정 안으로 푹 젖어 들게 하십시오. 겉면에만 머문 씨앗은 새들이 먹어버리지만, 당신의 어떤 욕망보다 말씀이 더 소중해질 때 그 말씀은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들을 때도 이 목적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은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해독제입니다. 잡초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땅에 좋은 씨앗을 가득 심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비축하여 고난에 대비하고, 경고의 말씀을 갈무리하여 죄를 경계하십시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설교 시간에 우리 곁에서 딴생각을 넣거나 편견을 부추겨 말씀의 씨앗을 가로채려 합니다. 매번 설교를 들을 때마다 단 하나라도 마음에 남기십시오. 노트에만 적어두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창고에 저장해야 합니다. 성경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지 말고, 음식을 씹고 소화하듯 깊이 음미하십시오.
다윗이 말씀을 마음에 둔 목적은 단 하나, 주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씀을 공부할 때 지적 호기심이나 단순히 남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 혹은 단순히 지적인 만족감을 얻으려는 유혹을 경계하십시오. 진리에 대한 본능적인 즐거움이 곧 하나님에 대한 즐거움은 아닐 수 있습니다. 또한 고통스러운 양심을 달래기 위해 위로의 말씀만 찾아다니고 실천해야 할 계명은 무시하는 태도도 옳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위로는 환영하면서도 복음의 의무는 부담스러워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말씀을 마음에 채워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참된 능력이 될 것입니다.
토마스 맨턴(Thomas Manton, 1620-77)
토마스 맨턴은 17세기 영국 청교도 황금기를 이끌며 당대 목회자들 사이에서 ‘설교자들의 설교자’로 추앙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서기와 올리버 크롬웰의 전속 목사를 지낼 만큼 신학적 깊이를 지녔었다. 그의 삶은 화려한 명성보다는 성경 본문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강해 설교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특히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신앙의 순결을 지키며 남긴 시편 119편 강해와 같은 방대한 저작들은, 단순히 지식에 머물지 않고 신자의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따뜻하고도 명료하게 풀어내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영적 울림을 주고 있다.